언제 서비스를 접어야 하는가
큐에잉은 3개월간의 PMF 검증 기간과 6개월의 인큐베이팅 기간을 거칠 예정이었지만, 인큐베이팅 도중이었던 3개월차에 서비스 중단을 선고 받고 집행유예 기간으로 마지막 한 달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렇게 도합 7개월의 시간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되었다. 이제는 답해야 했다. '이 서비스는 가망이 있는가?'
PO의 역할
QAing 프로덕트의 PO를 맡으면서, 초반 3개월 동안 시장 검증을 진행한 후 인턴 전환 면접을 봤었다. 그때 기억에 남는 질문 중에 'PO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전부터 PM과 PO의 차이, PO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했던 터라 '시장의 문제를 발견하고, 제품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잡는 사람'으로 답변했다. 면접 마지막에 면접관님께 질문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같은 질문을 여쭤봤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이것이었다.
제품을 살릴지 죽일지 결정하는 사람
특히 PMF를 찾기 전 단계의 제품은 PMF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이 제품이 '될 놈'인지를 계속해서 의심받기 때문에 PO의 역할은 제품의 생사를 고민하는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특히나 제품을 정말 자식처럼 키워왔던 입장에서 제품을 접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제품이 아니라, 문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창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품과 사랑에 빠지지 말고, 문제와 사랑에 빠지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도 PM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들었던 말이었다. 그렇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실천하는 건 굉장히 다른 일이었다. 문제를 사랑하고 싶었지만 7개월의 시간 동안 큐에잉이라는 제품을 너무 사랑해버리고 말았다.
처음 제품을 접고, 팀이 해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탕비실에서 약간은 현실 부정을 하며 서있었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다른 팀의 PO님을 보고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다. 그렇게 제품과의 거리두기를 해야함을 인정하고 나자, 남은 한 달을 달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검증했어야 할 위험
피봇을 하면서 '매출'에만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돈을 지불할 정도로 가치를 느끼는 문제를 찾아서 매출을 일으킬 수 있을까 문제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여기서 고려했어야 할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었는데, 바로 "사업 유효성"이었다. 여기서 잠시 <인스파이어드>에서 말하는 제품이 대응할 네 가지 위험을 짚어보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가치 위험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고객이 이 제품을 구매할까?를 검증하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문제는 사업 유효성에서 나왔다. 캡처프로가 제시하는 가격정책은 아래 두 가지였다.
베이직은 개인 단위로 매출이 일어나고, 1회 구매형이었다. 한편, 팀 플랜은 팀원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으며 월 단위 결제였다. 기존의 큐에잉과는 다르게 개인 단위 플랜에서 월구독이 아닌 1회 구매를 제안한 것이었다. 기본 캡처 툴과 경쟁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보니 매달 결제를 해야한다면 기본 툴로 돌아갈 것이라는 판단 하에 1회 구매로 하고, 가격을 다소 높게 책정했다. 하지만 이 선택은 우리 팀의 유지를 고려했을 때는 적절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 두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우리가 선택한 개인 단위 + 1회 구매 가격 정책은 매우 적절하지 않은 것이었다. 왜 그렇게 선택했을까 하면, 우선 타겟 시장이 더 넓다고 판단했고, 고객이 느끼는 문제의 정도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구현 가능성의 적절한 지점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제한된 시간 내에 뾰족하게 문제를 짚고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매출이 가능할지를 시험하기 위해서는 더 과감한 베팅을 했어야 했다. A/B 테스트도 양쪽 다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팀의 시간을 엉뚱한 곳에 쓴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때 우리는 B2B BM을 짜고, 그것을 테스트했어야 했다. 시간이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서비스 종료
그렇게 14건의 결제와 41만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지만, B2B SaaS를 만드는 팀이라는 팀의 정체성과 지속적 매출을 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하에 서비스를 종료하게 된다.
마지막까지도 고민하며 피봇로그를 업로드했던터라, 마지막에 서비스 종료를 결정하고 고객분들께 연락드리는 것이 더욱 죄송했던 것 같다. 그동안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큰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너무나 감사하고, 또 부족했던 인사가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회고, 복기, 반성
서비스 종료, 팀 해체를 앞두고 마지막 회고를 준비했다. 우리 팀의 전체 타임라인을 다시 훑어보고, 여러 선택들을 돌아보는 시간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뜻깊기도 했다. 그리고 분명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아직 깨닫지 못한 인사이트들이 훗날 발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페이지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의미있었다.
이후 다음 프로덕트, 다음 팀에서도 늘 하는 생각이었지만 그때그때 가장 중요한 과업, 그 주의 문제, 액션을 정리하는 것은 너무나 필요한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와 어딘가 찾으면 다 기록은 있다는 핑계로 소홀하기 쉽지만 오히려 그때그때 정리하는 게 가장 쉬운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돌아본 우리의 7개월은 분명 여러 시행착오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늘 새로운 배움과 지치지 않는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감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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