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
김주환
김주환 교수님의 유튜브 강의를 많이 듣기도 했고, 책 <내면소통>도 뜻깊게 읽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회복탄력성> 책에 대한 내용은 짐작을 하고 읽게 되었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어떻게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오히려 더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책이었지만, <내면소통>을 읽었을 때와는 다른 감상을 가지게 됐다.
2023년에 <내면소통>을 읽었을 때는 뇌과학과 의사소통에 대한 연구 결과들에 호기심을 많이 느꼈고, 책의 내용처럼 긍정적 내면소통 방식을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해봤다. 하지만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궁극적으로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으니, 전에 <내면소통>을 읽었을 때와는 감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경험을 어떻게 스토리로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사고를 돌아보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진짜 중요한 '목적'을 찾고 추구하는 일을 오히려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적 없는 수단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뭘까라고 묻는다면 '나만의 고유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나의 삶의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또는 나의 '행복'의 기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나의 방향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목적이 없는 상황에서는 수단은 큰 의미가 없다.
긍정성, 회복탄력성 모두 도구다. '무엇을 위해서' 그것이 필요한가하는 목적 없이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도구로 보고 있는 표현들을 책에서 접할 수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 뛰어난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나아가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이러한 인성지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 행복하면서도 미래의 성취와 성공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성공하고 나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 하나하나가 성공적이라면 내 삶 자체가 성공적일 수밖에 없다. 내 삶 자체가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일에서 성공해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건강하지 않다면 성공적인 삶이라 할 수 없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긍정성, 회복탄력성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곧, 그것을 도구 삼아 성공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성공이 무엇인가? 그 성공을 정의한 적이 없다. 나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정의하지 않고서는 단지 긍정적 사고를 갖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무엇을 위해서 강점을 발휘할 것인가
긍정적 정서의 향상을 통해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강점을 발견하고 이를 발휘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강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꿔야한다는 점은 삶에서 견지하면 좋을 자세라고 생각한다. 마틴 셀리그만 교수의 저서 《진정한 행복》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덕성과 강점을 발휘하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 강조했음을 인용하며 교수님 본인의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나는 강점 발견에 대한 설명과 문항을 통해 학습욕구, 통찰력, 심미안, 열정, 이렇게 네 가지가 나의 고유한 대표 강점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일상 생활 속에서 이 네 가지의 강점을 되도록 많이 수행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노력하는 중이다.
학습욕구를 위해서는 늘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새로운 연구 주제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게 되었다. 늘 같은 주제에 대해 강의하거나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유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두 번째 강점인 통찰력을 보다 많이 수행하기 위해서 나는 학생들과의 상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인생이나 진로 상담을 신청해오는 학생들에게는 따로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경험에 비추어서 조언을 한다. (...)
세 번째 강점인 심미안을 위해서 나는 다시 미술 평론에 힘을 쏟고자 한다. 수년 전까지는 꾸준히 미술 평론 일을 했었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은 연구와 논문 작성에 시간을 투입하느라 활동을 제대로 못했다. 하지만 심미안이 나의 강점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앞으로는 더 많은 시간을 미술 평론에 할애하려 한다. (...)
네 번째 강점인 열정을 발휘하기 위해서 우선 수업에 보다 더 열정적으로 내 자신을 던져 넣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연구나 강의를 열정적으로 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일 뿐만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내 공동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는다. 그것은 의미 있는 삶과도 연결되는 일이다.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행위, 상담을 하는 행위, 미술 평론을 하는 행위, 수업을 하는 행위를 더 증진하는 것으로 소개된, 이 '강점을 발휘하는 것'은 일정한 삶의 계획을 세우는 것에는 도움이 되겠으나, '무엇을 위해서?'라는 궁금증을 남긴다.
'블로그 글을 주 1회 쓸거야' '왜?' '그게 내 창작이라는 강점을 발휘하는 거니까'
조금 이상하다. 어디로 향하는지 방향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방향이 산발적으로 나뉘는 느낌까지 든다. 훌륭한 도구를 만들었다면, 도구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디에 쓸지를 더 고민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인정보다 넓은 시야의 필요성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고자 갈망하는 중독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나의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일단 차치하자.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긍정적 정보 처리를 통해 진정한 행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고자 갈망하는 중독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만 나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건강해지고, 그래야 긍정적 정서가 유발되며, 그래야 회복탄력성이 생겨난다.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런데 진짜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는 것 때문에 우리가 불행한가? 물론 영향이 있겠으나, 주변을 둘러보면 더 야박한 인정, 그리고 더 갈구하는 인정은 내가 나에게 하는 인정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 인정은 긍정적인 것으로 비춰지기 쉽다. 내가 나에게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어찌보면 겸손하고 더 발전하기 위한 미덕으로까지 여겨진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내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불행하게 하는 큰 요소다.
나조차도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다. 나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라고, 그래야 가치있는 거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책에서는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며 타인의 인정에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진짜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회복 탄력성에 대한 우려
한 가지 더 우려되는 점이 있다. 바로 누구나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긍정성을 습관화하면 누구나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
얼핏 보기에는 긍정적인 문장으로 읽힐 수 있다. 회복탄력성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노력하고 훈련하면 기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 긍정성이 낮은 사람에게 '너가 지금 힘든 건 너가 노력하지 않아서야'로 전해질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책은 카우아이 섬 연구에서 '고위험군'에 속한 201명의 아이들 중 3분의 1은 별 문제 없이 성장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3분의 1이 역경을 극복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반대로 나머지 3분의 2의 사람들이 환경을 극복하기 어려웠음을 간과하게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에 있어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나의 생각을 바꾸고, 나아가서 조금씩 환경을 바꿔 나가면서 삶을 바꿔나가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환경이 주는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가벼운 것으로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개인이 개선하고 바꿔나갈 수 있는 것에 대한 이해, 그 방법을 더 널리 알려나가는 것과 동시에, 환경의 어려움을 공동체가 보완해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책 제목이 <회복탄력성>인만큼 회복탄력성의 개념 자체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으로 적은 내용들이 어쩌면 이 책의 목적 자체에 부합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독자가 이 책만 읽고 오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히 언급해주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Last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