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조연출이 하는 일
어딜 가든 꼭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드라마 조연출은 어떤 일을 하나요?라는 질문인데요! 아무래도 조연출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보니 많이들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요. 조연출이 하는 일을 간단하게 설명드리고, 제가 드라마를 선택하고, 또 그만둔 이유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드라마 조연출이 하는 일
우선 조연출이라는 이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흔히 ‘감독님’이라고 하는 분은 드라마의 ‘연출’을 담당하는 분을 말해요. ‘조’연출은 말 그대로 연출을 돕는다는 뜻으로 감독님의 옆에서 연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조율하는 역할입니다. 스타트업에 비유하자면 CEO 스태프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죠!
그럼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을 한번 살펴볼까요. 보통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을 아래와 같이 세 단계로 나눕니다.
1) Pre-Production : 촬영 준비 과정. 대본 수정, 캐스팅부터 장소 섭외, 미술 등이 주를 이룹니다.
2) Productioin : 촬영 단계. 글로 표현되어 있던 장면들을 영상으로 담는 과정입니다.
3) Post-Production : 후반 작업. 편집, 색보정, CG부터 효과, 음악, 그리고 최종 방송 송출을 위한 종편 과정이 포함돼요. 또한 포스터, 티저와 같은 홍보도 함께 진행됩니다.
각 단계마다 참여하는 팀이 달라지고 각팀이 합류하는 시점도 다르지만, 연출과 조연출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합니다. 조연출은 이 각각의 단계에서 일정을 조율하고 각 팀과 소통하며, 감독님이 의도하신 바가 기한 내에 최대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역할을 담당하구요. 아직 감이 잘 안오죠! 단계별로 봐보겠습니다.
1. Pre-Production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는 하나의 영상을 보게되지만, 드라마를 만드는 팀은 대본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대본에 적혀있는 하나의 문장도 사실은 엄청나게 다른 결과로 표현될 수 있고, 대본에는 적혀있지 않은 디테일한 설정이 추가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촬영하다보면 이 대본을 수정하는 경우도 많이 있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산, 엎드려 있는데, 갑자기 그의 주위로 수십 명의 내관들이 모여든다. 내관들은 모두 병풍을 하나씩 들고 있다. 내관들이 일제히 병풍을 펼쳐 가벽을 세우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벽이 세워진다. 병풍들이 연결되자, 거대한 용 그림이 완성된다. 어둠 속에서 용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산, 용을 둘러보고 있는데 병풍 하나가 열리더니, 영조가 나타난다.
여기서 용 병풍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보통 병풍이라고 하면 하나로 쭉 연결되어 있어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내관들이 하나씩 들고 올 수 있는 형태여야 하겠네요. 그리고 가벽을 세울 수 있으려면 각각의 병풍 조각들은 하나씩도 세워질 수 있는 형태여야 하겠구요. 그리고 그 안에 사람 둘이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져야 하겠네요. 병풍 하나의 크기와 전체 병풍 개수는 몇개가 적당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 그림이 중요한데요. 이 용은 어떻게 생긴 용이어야할까요? 어떤 그림체여야 할까요? 어떤 용이 들어가야 이 장면에서 산이 두려움을 느끼고, 영조의 위엄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전체 대본을 보게 되면 이런 고민할 지점이 수도 없이 많아지게 됩니다. 주인공의 집은 어떤 곳이어야할까, 어떤 구조여야할까, 여기서 주인공은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주인공은 어떤 핸드폰을 쓸까? 문자로 협박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어떻게 되어야할까? 등 말 그대로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여기서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는 드라마가 수많은 팀이 함께 만드는 종합 예술이라는 점인데요. 같은 대본을 읽지만 각자의 머릿속에는 완전히 다른 영상이 펼쳐지게 되는거죠. 소품팀, 의상팀, 연출부, 제작부 등 각 팀은 각자가 여기서 담당해야할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대본을 해석하게 되고, 조연출은 각 팀의 해석과 연출의 해석을 잘 싱크를 맞추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때로 연출이 생각하지 못한 디테일을 챙기기도 하구요.
촬영을 나가기 전이라면 아직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각 팀끼리 모여서 함께 컨셉부터 세세한 디테일까지 함께 잡는 회의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장소 회의, 캐스팅 회의, 의상 회의 등 결정이 필요한 사안을 함께 정리하고 실제 제작에 들어가서 촬영 때까지 준비가 될 수 있도록 합니다.
2. Production
드라마가 편성되면 첫 방송부터 마지막 방송까지 날짜가 정해지게 됩니다. 명확하게 지켜야하는 데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그 날짜를 기준으로 역으로 계산해서 촬영이 끝나야 하는 날짜를 계산하게 되는데요. 그 사이에서 예상되는 촬영 일수, 후반에 들어가는 공수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더라도 정말 방송이 나가기까지 계속해서 수정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주로 촬영 스케줄은 연출부가 조율하기 때문에 모든 부분을 조연출이 담당하진 않습니다. 각 씬을 장소별로, 시간대별로, 출연 배우별로 정리하고 스케줄을 만드는 과정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거의 예술에 가깝습니다. 촬영 세팅 시간, 이동 시간 등을 고려해서 스케줄을 수도 없이 조정하고, 무엇보다도 촬영날이 가까워오면 기상 예보를 끼고 살면서 촬영 진행에 문제가 없을지도 계속해서 확인해야 하죠. 갑작스러운 비, 눈으로 인해 출발 전에 스케줄이 바뀌는 경우도 빈번하구요.
촬영 현장에서도 많은 변수가 생기게 됩니다. 소품을 못챙겼다거나, 차가 막혀서 스텝이 도착을 못했다거나, 촬영장 바로 옆에서 공사를 하고 있다거나 정말 수도 없는 변수가 있습니다. 조연출은 보통 촬영장에서는 각 씬에 필요한 소품이나, 미술이 문제 없이 되어있는지, 만약 안 되어있다면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대안을 찾을 수 있을지 등 변수에 대처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물론 큰 문제가 없다면, 촬영팀, 조명팀, 그립팀과 함께 어떻게 찍을지를 고민하거나, 배우의 연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리 세팅이 필요한 다음 스케줄로 먼저 이동해서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촬영 시간 내에 최대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촬영 스텝들이 도착하기 전에 필요한 준비를 먼저 끝내두는 거죠. 그래서 조연출은 현장에 필수 인원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장은 연출부가 진행을 보고, 조연출은 현장도 봤다가 다음 스케줄도 봤다가 하는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3. Post-Production
그리고 방송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후반작업과 홍보가 중요합니다. 후반 작업 스케줄은 주로 조연출이 담당하고, 홍보 스케줄까지 함께 플래닝하기 때문에, 후반 작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엄청난 마감 압박을 받게 됩니다. 조연출이라는 허브를 통해서 언제 어떤 작업을 할 것인지 일정이 정리되게 되고, 촬영 스케줄의 틈 바구니에서 감독님의 시간을 빼와야하는 일도 자주 생기게 됩니다. 이때 촬영장은 보통 B팀을 담당하시는 감독님이 맡아주시고, 메인 감독님은 후반 작업을 하러 이동하기도 합니다.
방송을 만드는 것은 각 팀의 재량으로 운영이 되었다면, 방송을 내기 위해서는 내부 관계자와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전체 분량은 몇 분이 되어야 하는지, 앞 뒤로 어떤 내용이 붙어야 하는지, 연령 제한을 붙일 것인지 등의 조율을 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다른 프로그램과 방송 시간이나, 종편실 등의 자원을 두고 경쟁해야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때는 시청률이나 방송 시간 등의 여러 이유를 들어서 필요한 걸 얻어내야 하기도 하죠.
또한 티저, 예고, 하이라이트 등의 영상물을 조연출이 직접 만드는 경우 각각의 편집, CG, DI, 음악, 효과, 종편까지를 온전히 담당해야해서 일이 배가 됩니다. 그래도 조연출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 홍보이기도 해서 뿌듯함도 많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에요.
조연출의 업무는 대략 이렇게 세 단계로 구분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단계를 한 명의 조연출이 담당하는 것은 아니고, 처음 들어가게 되면 현장을 팔로우하는 막내 조연출부터, 현장과 내부를 같이 보는 서브 조연출, 내부를 총괄하는 메인 조연출 순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한 프로그램에 조연출이 두 명에서 세 명 정도 같이 하기 때문에 인력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서로 의지하면서 할 수 있는 환경이 됩니다.
드라마 조연출 FAQ
제가 조연출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 중 하나가, 같은 질문을 정말 수도 없이 받았기 때문인데요. 조연출이 뭐하는 사람인지 설명하고 나면 꼭 따라붙던 질문들을 몇 개 골라봤습니다.
연예인 많이 보나요? 누가 제일 잘생겼나요/예쁜가요?
드라마 조연출은 작품에 출연하는 연예인을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함께 드라마를 찍으면서 보기 때문에 연예인을 많이 본다기보다는 몇몇 분을 오래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주 보고 유대가 생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외모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많이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편집하면서 촬영본을 볼 때는 종종 감탄할 때도 있긴 했습니다.
조연출 하면서 재미있던 썰 없나요?
재밌는 일은 너무 많은데요. 그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은, 저희가 어렵게 섭외했던 장소가 화재로 없어진 일이었습니다(...!) 농촌 배경의 작품을 할 때 어렵게 어렵게 마을에 있는 집을 촬영 장소로 구했는데요. 그때 찾아야할 장소는 수두룩한데 확정한 장소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하나 정했네' 싶은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세트장에서 촬영하고 있는데 갑자기 섭외팀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촬영하기로 한 집이 산불이 나서 불타서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엄청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인생 드라마가 무엇인가요?
'커피프린스 1호점', '궁', '멜로가 체질'을 정말 많이 봤습니다! 특히 커피프린스 1호점은 여름만 되면 생각나는 드라마에요! 계절을 잘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미술이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궁은 생방송으로 챙겨봤었는데 그때 오빠랑 리모컨을 두고 엄청 싸웠던 기억이 나네요.
같이 작품을 해보고 싶었던 배우는 누구인가요?
저는 이 질문이 개인적으로 답하기가 정말 어려웠던 것 같아요. 배역에 따라서 너무 다르다고 생각해서 그런데요! 어떤 대본이 있고, 그 대본의 인물을 봤을 때는 어떤 배우가 하면 좋을 것 같다는 그림이 그려졌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잘 안그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꼽아보자면 아이유님과 김혜윤님, 남지현님 너무 좋아합니다....!
드라마 조연출을 한 이유
좋아하는 드라마가 있으면 일주일이 설레고, 월요일이 기다려졌습니다. 사실 드라마를 보는 시간은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닌 어떻게 보면 비생산적인 활동이잖아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드라마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영화랑 드라마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엄청 멋진 친구랑 카페에서 한 두시간 수다떨고 오는 느낌이면, 드라마는 매일매일 보는 가족 같았거든요. 긴 호흡으로 주인공이 아닌 인물들의 세상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더 진짜 세상 같이 느껴졌어요.
누군가의 인생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드라마 조연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드라마 조연출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점도 많았지만, 대본을 읽다가 울컥하고 장면을 실제로 찍으면서 모두가 숨죽여서 몰입하던 그 순간들이 모든 어려움을 잊게 해줬습니다.
아직도 저에게 가장 기억이 남는 장면은 <카이로스> 16화의 마지막쯤에 나오는 장면인데요. 어떻게 보면 클리셰 같은 장면인데도, 드라마 조연출로 서사를 쭉 따라오면서 감정이 차올랐던 때여서 그런지 촬영 내내 구석에서 몰래 눈물을 닦았던 기억이 납니다.
드라마 조연출을 그만둔 이유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요. 아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로, 저는 촬영장보다 후반 작업을 할 때가 더 재미있고 저랑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반 작업에서는 모든 스케줄 관리부터 여러 결정들이 조연출의 손에 달려있거든요. 여러 팀이랑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와 의사결정권한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저랑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연출은 현장이 본 무대라는 점이었어요. 물론 후반 작업에서도 감독님이 결정을 많이 하시지만, 결국은 촬영을 잘 해야 후반에서도 다듬을 수 있는 재료가 생기는 것이어서 촬영이 압도적으로 중요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연출은 촬영장에서 행복해야한다!라는 저의 기준에서 봤을 때 저는 연출로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로, 연출이 정말 제 길이라면 오히려 다른 것과 비교했을 때도 더 좋다는 걸 알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직업으로 드라마 조연출을 하게 됐고 물론 좋았지만, 이대로 이어서 하게 되면 정말 제대로 이 일이 내 일이라는 걸 알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도 한켠에 계속될 것 같았구요.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면서 그만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음에도 다른 분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모르시는 분들이 훨씬 많다는 걸 피부로 느끼면서,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각각의 개별 매체 하나가 갖는 힘은 많이 줄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어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행복하게 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게 제 안에 있는 강한 동기부여였기 때문에, 이제는 콘텐츠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드라마 조연출을 그만두게 되었고 PM이라는 직무를 선택하게 되었는데요! PM도 마찬가지로, PM은 뭐하는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 직무에요. 다음 글에서는 PM이 뭐하는 사람인지 한번 말씀드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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