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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 작품 성격
  • 실천적 철학
  • 인식론
  • 1) 지식은 감각・지각이다
  • 2) 지식은 참된 판단이다
  • 3) 지식은 로고스가 첨가된 참된 판단이다.
  • 이데아론
  • 상기론 : 신화적 설명
  • 선분의 비유
  • 동굴의 비유
  • 태양의 비유
  • 이데아
  • 에이콘
  • 판타스마
  • 분리의 기술, 순수화
  • 영혼불멸론
  • 소크라테스의 자전적 이야기
  • 영혼을 돌보는 일의 중요성
  • 논쟁
  • 영혼삼분설
  • 덕론
  • 철인정치
  • 예술론
  1. Sophia
  2. 서양철학사

플라톤

개요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 명문 정치가 집안에서 출생한 유망한 청년이었지만,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보고 정치의 꿈을 접고 철학자의 길을 가게 된다. 그는 자신의 대학인 아카데미아를 설립해 철인, 철학자를 양성하고자 했다. 아카데미아는 기원전 5세기경 설립되어, 529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유스티아누스 1세가 학교를 폐쇄할 때까지 약 1000년 가량 유지된 학교였다.

작품 성격

소크라테스는 본인이 직접 저작을 남기지 않은 반면, 플라톤은 수많은 대화록을 남겼다. 플라톤의 철학은 이데아론처럼 대단히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으나, 이것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대화록에 있는 진리를 찾아나가는 도전, 그러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국주의는 복종을 요구한 반면, 그리스에서는 평등한 이성으로 거래를 위해 논쟁을 하고, 지혜의 친구가 되는 철학이 가능했다. 즉, 대화의 형식은 근본적으로 이성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대화록의 형식은 이성의 생김새를 보여주는 형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을 헤겔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가 순수하게 철학적인 내용만 담고 있는 플라톤의 저서를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플라톤의 철학은 우리 앞에 아주 단순한 형태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대신에 우리는 그의 대화록만 가지고 있을 뿐이며 이 대화라는 형식이 그의 철학을 곧장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들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힘들게 만든다. 대화라는 형식은 많은 요소들, 많은 이질적인 측면들을 가지고 있다. - 헤겔, 철학사, 2, 2.

실천적 철학

플라톤에게 철학은 단지 이론이 아니라 실제이자 실천이었다. 그는 철학자가 정치의 우두머리가 되는 철인정치의 실현을 위해 시라쿠사 섬을 세 차례 여행했다. 그에게는 진짜 삶을 바치면서 계속해서 시도한 진지한 철학의 실현이었다. 사유와 그에 기반한 실천이 일치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1

1차 여행 (기원전 388-387년)

디오니시오스 1세(참주)와 만나 철인청지를 실현하려고 했으나 실패한다. 아테네로 돌아와 아카데미아를 설립해 20년간 연구하고 학생을 양성한다. 이는 곧 철인정치의 실현을 위한 일종의 준비 과정이었던 것이다.

2

2차 여행 (기원전 367년)

디오니시오스 1세가 사망하고, 2세가 즉위했을 때, 아카데미아의 학생이었던 디온(시라쿠사의 귀족)의 초청으로 다시 방문한다. 이때는 디온(삼촌)이 디오니시오스 2세(조카)의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는 의심으로 인해 실패하게 된다.

3

3차 여행 (기원전 361년)

디온의 촉구로 다시 방문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4

후속 (기원전 357년)

플라톤 없이 아카데미아의 회원들과 무장한 군인들이 섬을 방문해, 디온을 왕으로 추대하는데 성공했다. 최초의 아카데미아 출신 정치가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3년 뒤 내란이 일어나 살해되며 철인정치 실현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식론

인식론, 지식이론(Theory of Knowledge)은 '무엇이 참된 지식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한다. 플라톤의 인식론은 <테아이테투스>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테아이테투스라는 당시 유망한 수학자와의 대화를 담은 대화록이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참다운 지식이 무엇인가?'를 검토한다.

1) 지식은 감각・지각이다

우리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인식할 수 있는 음식, 꽃, 자연 등이 지식이고 주장한다면, 그에 대한 반론으로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 때문에 기준이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지식이라는 것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만인이 수긍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지식이 아니다.

이는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상대주의의 기원)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개인마다 각자가 척도다라고 하는 상대주의는 절대적인 진리, 지식으로 여겨질 수 없다고 반박한다.

2) 지식은 참된 판단이다

다음으로 어떤 판단이 지식의 척도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과는 빨갛다', '커피는 검은색이다'처럼 'S is P'라는 주술구조로 대상에 대해 판정을 내리는 형태를 취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배심원들이 잘못된 증거로 잘못된 판단을 했는데 운좋게도 마치 희극에서처럼 범죄자를 잡기는 했다. 이런 경우에도 범죄자를 잡았으므로 참된 판단이지만 이것이 지식인가? 맞았다고 해서 그것이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도 일상에서 오지선다 문제를 때때로 찍어서 맞추곤 한다. 이런 정답도 참된 판단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3) 지식은 로고스가 첨가된 참된 판단이다.

로고스 즉, account explanation 설명을 첨가한 참된 판단은 지식일까? 우리가 어떻게 그러한 참된 판단을 내렸는지 설명할 수 있으면 지식일까?

플라톤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A라는 원과 B라는 원이 있을 때, A가 B보다 크다고 하면, 그 이유를 면적이 이렇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설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양자의 공통적인 원의 이데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A가 B보다 크다'와 같은 판단을 하기 위해서 그 이전에, A도 원이고, B도 원이다라는 '원'이라는 개념이 필요하고, 그것은 곧 이데아에 대한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 또한 지식이아니다.

이데아론

플라톤은 어떤 것을 같은 종류로 묶거나 유사함, 다름을 인지하게 만드는 배후에는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그때그때 이데아를 상기하는 것이다.

책이란 무엇인가? '앞장에 표지가 있고, 중간에 글씨가 써진 낱장 종이들의 묶음이 있고 마지막에 뒷장이 있다'와 같이 설명하는 것은 책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즉, 참된 지식이 아니다. 이런 것을 떠나서 이 책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다. 즉, 책의 관념, 책의 이데아에 대한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각각의 이데아를 우리는 매번 다시 기억해내기 때문에 인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무엇을 상기한다는 것일까?

상기론 : 신화적 설명

플라톤은 이데아론과 관련해 일종의 신화적 설명에 의존한다. 인간은 원래 이데아를 알고 있었지만, 태어나면서 레테 망각의 강을 영혼이 건너오는 동안에 이데아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세상 삶을 살아가면서 이데아와 유사한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을 잠깐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최초의 철학자들은 과학적 개념 체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미 있어왔던 관념을 활용해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데아라는 개념 또한 그러한 한계 속에서 신화적 설명에 의존하게 됐다. 이데아는 모든 것의 공통적인 개념으로서 제시된 것, 미리 알고 있는 지식, 본유적인 것,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제시된다.

선분의 비유

플라톤은 지식을 지성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과, 감각을 통해 얻어지는 견해로 구분했다. a에서 e로의 수직선 위에 지식이 존재함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Pistis는 실제 생활을 만드는 믿음과 확신으로, '내일도 해가 뜰 것이다'처럼 누군가가 보증해주는 사람은 없지만 일상에서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을 말한다. 이러한 믿음은 플라톤에게는 Doxa 견해였다.

한편, Episteme 지식, 인식은 이데아와 수학적 대상으로 또한 구분되었다. 이때 수학적 대상과 이데아는 어떻게 구분될까?

그런데 이건 내가 '지성에 의해서[라야]알 수 있는'(noeton)것이라고 말한 종류(eidos)이기는 하나, 이 종류의 탐구와 관련해서는 혼은 어쩔 수 없이 가정들을 이용하게 되고 원리(근원)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혼이 가정들로부터 벗어나 더 높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네

이때의 이성은 가정들을 원리들로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밑에(hypo) 놓은 것(thesis)' (가정: hypothesis)들로서 대하네. 즉 '무가정인 것' (to anhypotheton)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원리(근원)'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들이나 출발점들처럼 말일세

여기서 알 수 있듯, 수학적 진리를 찾기 위해 활용하는 추론적 사고는, 가정들을 이용하고 근본으로는 나아가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혼이 근본적, 이상적인 것으로 가지 못하고 가정에 묶여 제한된 한계 안에서만 사유를 하는 것이 곧 수학이라는 것이다. 반면, '이때의 이성' = 직관은 문자 그대로, 밑에 놓은 것으로 그 자체로서 대하는 것, 무가정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삼각형을 내각의 합이 180도인 도형이라고 정의한다면, 이 지식은 모든 도형은 평면 위에 놓여있다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이렇게 곡면에 삼각형이 있는 식으로 전제가 바뀔 경우, 삼각형에 대한 지식도 바뀌게 된다.

그와 달리 참다운 진리, 철학은 가정이라는 것이 사고 전체 과정을 제한하지 않고, 사유의 발판으로서만 존재한다. 즉, 무가정적인 것이다. 철학으로 접근한 삼각형은 어떤 전제가 없이, 삼각형 그 자체는 무엇인가?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머니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머니를 아버지의 쌍, 자녀를 둔 사람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아로서의 어머니 그 자체를 파악하는 방식이 철학이다. 하지만 이런 규정 없이 삼각형, 어머니, 아버지 동의 개념에 접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나 플라톤은 세속적, 관계, 내재적 전제 등을 제외하고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인식을 강조했다.

동굴의 비유

국가론에서 나오는 개념으로, 철학자들의 운명까지도 담고 있다. 이데아를 보고 참다운 인식을 얻은 자 즉, 철학자는 되돌아와서 참다운 것을 알리려 하지만 오히려 죄수들의 의견인 Doxa의 세상에서 박해받게 됨을 소크라테스 등의 사례로 설명하는 것이다.

1) Sensible World : 비진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수로 오직 동굴만 바라볼 수 있게 되어있다. 그들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벽에 비친 것으로, Eikasia 짐작이다. 또, 죄수들끼리 이야기는 나눌 수 있지만 이는 죄수들의 의견, Doxa에 불과하다.

2) Intelligible World : 진리

한편 동굴 밖에는 이데아가 있다. 이데아는 Intelligible realities로서 존재한다. 최고의 이데아, 모든 이데아의 목적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때 한 죄수가 사슬을 끊고 동굴 밖으로 나가 이데아를 보게 되고, 그중에서도 태양에 비유되는 선의 이데아를 보게 된다. 그는 당연히 혼자만 알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동료 죄수들도 참다운 진리로 인도하기 위해 다시 동굴로 돌아가 그들을 데려오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오니 어두컴컴해서 눈이 잘 안보이고 더 헤매게 되었고, 죄수들은 이 사람에게 화를 내며 죽이려고 한다. 플라톤은 이게 곧 철학자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태양의 비유

플라톤은 태양의 비유를 통해 지식에서 시작한 인식론을 존재론으로 연결한다. 선의 이데아, 최고의 이데아가 존재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태양은 좋음의 이데아, 선의 이데아를 상징한다. 태양은 모든 사물을 보이게 해줌으로써 인식하게 하는 조건이자, 존재가 존재하게 하는 조건이다. 모든 것은 태양에 의해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사과나무를 인식하게 해주는 것은 태양이다. 또한 태양은 사과나무를 자라게 해주는 생성, 성장의 동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태양 그 자체는 생성하는 것, 자라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자라나는 것의 원천이다.

태양은 보이는 것들에 '보임'의 '힘' 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들에 생성과 성장 그리고 영양을 제공해준다고 자네가 말할 것으로 나는 생각하네. 그것 자체는 생성(생성되는것: genesis)이 아니면서 말일세

인식되는 것들의 인식됨이 가능한 것은 '좋음(선)'으로 인한 것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존재하게(einai)' 되고 '본질(실재성: ousia)'을 갖게 된 것도 그것에 의해서요. '좋음'은 [단순한] '존재(ousia)'가 아니라, 지위와 힘에 있어서 '존재'를 초월하여 있는 것이라고 말하게나

나아가서, 존재하게 되고 본질을 갖게 된 것도 좋음의 이데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인식한다고 해보자. 예를 들어, '이 사과나무는 잘 자랐다'와 '이것은 좋은 사과나무다'는 같은 뜻이다. 반대로, '이 사과나무는 병들었다'와 '이 사과나무는 좋지 않다'는 같은 뜻이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인식할 때 좋음의 편차를 통해서 인식한다. '이것은 좋아, 좋은 물건이야' 혹은 '이것은 못만들었네, 나쁜 물건이야' 라고 하면서 자연히 좋은 것을 추구한다.

모든 사물은 좋은 것 또는 나쁜 것으로 인식된다. 이때 인식이 가능한 것은 좋음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좋음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어떤 사물이 좋다, 나쁘다를 평가할 수 없고 그것의 본질을 인식할 수 없다. 이처럼 좋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 그러한 좋음을 척도로 인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데아라는 관념, 즉 좋음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할 때 우리는 좋음의 이데아를 상기한다.

또한 모든 사물을 좋음을 향해서 존재하게 된다. 사과 씨는 씨로 묻힌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로 자라난다. 즉, 좋음을 향해서 이동하고 운동한다. 좋음을 향해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삶이다. 좋음에 관념이 없다면, 좋음의 이데아가 없다면, 어떻게 좋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겠느냐라고 지적한다. 좋음이라는 하나의 척도가 있어야 모든 사물이 좋음을 향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게 된다. 즉, 좋음은 존재를 초월하여 있는 것이다. 좋음은 존재의 일원이 될 수 없고, 존재보다 상위에 있는 것, 초월하여 있는 것으로서 존재한다.

이데아

이데아는 참다운 것, 원형, 모범, 원인의 의미를 개별적인 사물들에 대해 지닌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다음의 세 종류로 구분한다.

1

가치의 이데아 : 아름다움, 옳음, 좋음

2

기하학 공간과 수학적 개념 : 하나, 사각형, 모서리 등

3

기하학 공간과 수학적 개념 : 크다/작다, 빠르다/느리다, 두 배/절반

그런데, 원형이라는 것은 모범적인 것으로서 멈춰져있는 것이다. 즉, 동적인 힘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아로부터 실제 현실의 존재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동적인 힘이 필요하다.

에이콘

현세는 이데아의 복사품, 그림자, 에이콘(Eikon, copy)으로서 존재한다. 이데아의 성격을 나눠받은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때 좋음의 기준은 이데아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된다. 예를 들어, 좋은 신발은 신발이라고 하는 이데아의 원형을 잘 분유받은 것이고, 나쁜 신발은 그러한 원형을 분유받지 못한 것이다. 즉, 나쁨의 이데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현세의 복사품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이데아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때도 플라톤은 이 작용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화적 설명을 끌어온다. 데미우르고스라는 창조자를 도입해 그가 태초의 혼란, 카오스로부터 재료를 채석장에서 재료를 가지고 Idea라는 청사진을 두고 개별자들을 만든 것이 바로 현세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기독교적 창조자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상정한다면, 데미우르고스는 그와 달리 카오스로부터 이데아를 투영해 창조했다는 점이 다르다.

판타스마

이때 플라톤은 비존재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철학자로, 소피스트들은 가짜 철학자로 생각했는데, 소크라테스가 철학자의 이데아를 분유받은 존재라면 소피스트들은 어떻게 설명해야할 것인가?하는 물음이 생긴 것이다.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 nothing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면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을 비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비존재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한편으로는 이데아를 나눠받고(분유) 있는 것이 있는가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적인 형태를 나눠받고 있지 못한 것들(쓰레기 같은 것들), 가짜존재, 거짓된 존재들이었다. 전자는 에이콘(Eikon, copy, 복사물, 적자)이라 하고 후자는 판타스마(Phantasma)라고 일컫는다. 판타스마는 현대철학에서 허상을 지칭하는 시뮬라크르(simulacra, 허상, 이데아를 나눠받지 못한 것들)에 해당한다.

즉, 가짜존재, 거짓된 존재들의 이데아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분유받아 가짜존재가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이데아를 분유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들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비존재는 참답게 존재하지 않는 것, 즉 판타스마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에서 악을 설명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기독교는 유일신론으로서 악신을 부정한다. 선신과 악신의 싸움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조로아스터교와 다른 점이다. 이러한 유일신론은 현실에 존재하는 악함을 설명할 때, 악신의 주관을 받아 악함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선함의 결여됨으로써 악함이 생긴다고 말한다.

분리의 기술, 순수화

플라톤이 대화를 진행하는 방법은 분리의 기술(diakritike), 순수화(kathamos)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플라톤의 대화록에서 대화를 이끄는 역할인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던진다. 상대방에 답변을 하면 다시 소크라테스가 반론을 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답변이 수정되고 점차 이데아를 찾아나간다.

답변의 특정 부분은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분리해나갈 때, 이데아의 후보로 등장했으나 마땅치 않아서 버려진 것들은 판타스마(Phantasma), 불순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불순물들을 계속해서 제거한 후, 마지막에 남는 것이 바로 이데아, 어떤 개념의 definition이다.

이러한 작업은, 참다운 이데아에 비추어서 불순물이 끼지 않은 것을 골라내는 작업으로, 비유적으로는 금을 골라내는 분리의 기술과 유사하다. 그런 의미에서 분리의 기술, 순수화라고 부른다.

영혼불멸론

고대 세계에서는 영혼의 문제, 영혼의 불멸에 관심을 두었다. 이때 플라톤이 <파이돈>편에서 말한 영혼불멸론은 기독교의 논리로도 이어지며 보편화되었다. <파이돈>편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앞두고, 과연 영혼은 불멸하는가에 대해 나눈 대화 내용을 담고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주장하는 영혼불멸론은 상기론에서 파생된다.

1

우리의 영혼은 이데아와 동류의 것이다

상기론은 지식은 기억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 컵이 각각 사기, 플라스틱, 유리로 된 컵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이 셋을 모두 컵으로 인식하는 것은 컵의 이데아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영혼, 마음이 이데아를 상기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은 이데아와 동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같은 것은 같은 것에 의해서

다원론자 엠페도클레스는 귀는 듣는 역할만, 눈은 보는 역할만, 입은 맛보고 말하는 역할만 하는 것처럼, 같은 것은 같은 것에 의해서 지각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감각기관이 일종의 형태를 지닌 구멍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입자들 중에서 이러한 구멍과 모양이 일치하는 입자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하나의 수식을 푼다면 풀이를 이어가면서 마음에 있는 수학적 관념들은 다른 수학적 관념들과만 관계를 맺지 다른 류의 관념과는 관계를 맺지 않는 것과 같다.

3

이데아는 단순하다

이데아는 고립된 것으로 존재한다. 현실의 어머니는 남편, 아들, 딸과 같은 다른 항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어머니로 인식되고, 수학은 전제로부터 결론을 이끌어간다. 즉, 전제에 구속되는 제한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이데아는 어머니를 다른 항들과의 관계로, 복합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하다. 그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립하는 것이다.

4

이데아는 사멸하지 않는다

죽음은 복합적인 것이 단순한 것으로 분해되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것은 분해되지 못하기 때문에 죽을 수 없는 것, 불멸하는 것이다.

5

영혼은 불멸한다

우리의 영혼은 이데아를 상기하고 인식할 수 있다. 같은 것은 같은 것에 의해서 인식되기 때문에, 영혼은 이데아와 동류의 것이다. 그런데 이데아는 단순하기 때문에 분해될 수 없고 따라서 사멸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도 이데아와 같이 단순한 것으로서 불멸한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유물론자들(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보고, 모든 정신 현상도 물질의 작용이나 그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은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 심미아스 : epiphenomenalism 부대현상론

    • 육체가 근본이고 영혼은 부수적인 것이다. 육체는 악기이고 영혼은 거기에서 나오는 음악이다. 따라서 악기가 부서지면 음악도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 반론 : 음악은 조화의 정도가 있다. 음악은 복합적인 음들로 구성되므로 더 조화로운 음악과, 덜 조화로운 음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영혼은 단순한 것이기 때문에 더 조화롭거나 덜 조화로운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음악에 비유할 수 없다.

  • 케베스

    • 육체는 영혼이고, 우리의 몸은 옷이다. 우리는 사는 동안 계속해서 옷이 헤지면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영혼도 하나의 육체로, 죽음을 맞이하면 다음 육체로 옷 갈아입듯 환생하고 윤회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옷을 갈아입어도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 것처럼 영혼도 언젠가는 죽는 것 아닌가.

    • 반론 :

      • 3을 3으로 만드는 것, 3의 정체성은 홀수의 이데아를 분유받아 생긴 홀수라는 개념이다. 한편 3+3 = 6에서 6은 홀수의 이데아는 떠나고 짝수의 이데아를 다시 분유받음으로써 짝수라는 개념을 갖는다. 6은 짝수로서의 6이 된 것이다.

      • 눈은 차갑다. 차가운 이유는 차가움의 이데아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봄이 오면 눈이 녹고 사라진다. 즉, 차가움의 이데아가 떠나고 따뜻함의 이데아가 들어온 것이다.

      •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영혼이다.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영혼이다. 신체가 죽으면 영혼은 그것으로부터 떠나게 된다. 영혼을 분유받아서 살아있었던 신체는 생명을 잃으면 영혼이 그로부터 떠나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즉, 죽음은 비영혼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혼의 관점에서 신체는 죽었더라도 그 신체를 살아있게 해주는 영혼은 신체로부터 떠났을 뿐, 죽음의 현장인 육체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사멸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자전적 이야기

영혼 불멸설을 두고 케베스와 나누던 대화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젊었을 적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탐구라 부르는 바로 그 지혜를 열망했었다. 그 지혜는 자연철학, 자연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철학으로 아낙사고라스를 스승으로 모셨다. 아낙사고라스는 동질소 개념을 제시하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하는 요소로 누스, 정신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지만, 그가 말한 정신은 자연의 물질 가운데 하나와 같은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이에 실망한다.

소크라테스가 감옥에 앉아있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했을 때, 자연철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것이다. 내 몸이 뼈들과 근육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뼈들은 단단하고 관절들에 의해 서로 분리가 되어 있는 반면, 근육들은 팽팽해지고 느슨해질 수 있어서 이것들이 뼈들과 살들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사지를 굽힐 수 있게 만들어져 있고, 그러한 이유로 내가 여기에 다리를 굽히고 앉아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이유로 감옥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참된 원인은 아테네인들에게는 나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이 되었고, 바로 이 때문에 나에게는 여기에 앉아있는 것이 더 좋은 일이고, 여기 남아 그들이 명하게 될 처벌은 받는 것이 더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에 앉아있다는 것이다.

즉, 소크라테스에게는 뼈들과 근육들과 같은 것을 행위가 일어나는 원인이라고 말한다면, 부주의한 주장이 된다. 그것은 진정한 원인과 그것 없이는 원인이 원인일 수 없는 것이 다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관심은 자연적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탁월함,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영혼을 돌보는 일의 중요성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탁월함, 정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영혼이 불멸한다면 더욱더 영혼을 돌보아야함을 강조한다. 살았을 때의 시간이 죽어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후의 시간까지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데스의 세계는 기독교의 지옥과는 다르다. 하데스는 무기력한 세계로, 선명한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허깨비처럼 떠다니는 세계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보게들, 다음과 같은 점은 유념하는 것이 옳네. 만약에 영혼이 불사한다면, 그것의 돌봄은 사실 우리가 살아있음이라 부르는 이 있는 그 시간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을 위해서 필요하네.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그것에 무관심하기라도 하면, 이제 정말 그 위험은 무서운 일로 여겨질 걸세. 만일 죽음이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이라면, 나쁜 인간들에게 그것은 신의 선물이겠지. 그들은 죽을 때 몸으로부터 벗어남과 동시에 영혼과 함께 자신들의 나쁨으로부터도 해방되는 것이니 말일세. 그런데 이제 영혼이 실은 불사인 것이 분명하니, 그것에게는 최대한 훌륭해지고 현명해지는 것 외에는 나쁜 것들로부터의 어떤 도피나 구원도 없네. 왜냐하면 영혼은 교육과 양육 외에는 어떤 것도 지니지 않은 채 하데스로 가게 되는데, 바로 이것들이 저승으로의 여정의 맨 처음부터 죽은 자를 최대로 이롭게 하거나 해롭게 한다고 이야기되는 것이니 말일세.

이 말에서 사실상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죽음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영혼의 죄를 가지고 가는 연장선이기 때문에 자살을 해결책으로 삼는 것은 근본적 해결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니체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살아있는 것보다 죽은 후 영혼을 위해 살고 있다. 저편의 삶을 위해서 현세의 삶을 희생하고 있다.'

논쟁

1) 유물론, 에피쿠로스주의

플라톤의 사고방식과 대립적인 것으로 유물론적 전통, 에피쿠로스주의가 있다. 이는 현대의 들뢰즈로도 이어진다.

더욱이 우리는 이성이 육체와 함께 나서, 같이 자라고 함께 늙어가는 것을 감지한다. 왜냐하면 마치 아이들이 굳지 않은 여린 몸으로 뒤뚱거리듯, 정신의 연약한 사고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강건한 힘으로 나아가 성숙하면, 분별력도 더 커지고 정신의 힘도 더 증가한다. 하지만 그 후에 육체가 세월의 강한 힘에 의해 뒤흔들리고, 힘이 둔해져 사지가 늘어지게 되면, 총기는 절뚝거린다. 혀는 길을 벗어난다 .이성은 비틀거린다. 모든 것이 일시에 무너지고 사라진다. 그러므로 영혼의 모든 본성도 분해되는 것이 당연하다.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224쪽

2) 칸트

플라톤은 영혼을 실체(substance)로, 단순한 것으로, 인격으로, 현존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를 칸트는 종합 판단이라는 개념을 통해 반박한다.

  • analytic judgement

    • 술어가 주어에 붙을 권리는 주어 자체에 있는 경우.

    • '백말이 흰 말이다'라는 문장에서 흰 말이다라는 술어가 붙을 권리는 백말이라는 주어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장은 말의 뜻 풀이일 뿐 어떤 인식의 지평도 넓혀주지 못하는 것이다.

  • syntactic judgement

    • 주어에 술어가 붙을 권리가 주어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경우.

    • '검은 컵은 비싸다'라는 문장에서는 위의 문장과 달리 지식의 확장이 일어난다. 즉 종합판단으로서 우리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지식을 얻고, 종합판단을 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에 달린 것이다.

플라톤의 실체, 단순, 인격, 현존이라는 개념은 종합 판단이다. 하지만 영혼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종합 판단을 내리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영혼은 종합 판단을 할 수 없는 대상인 것이다. 영혼의 속성을 전제로 한 영혼 불멸론은 따라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영혼삼분설

플라톤은 영혼의 단순함을 주장했지만, 그 기능은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기능은 각각 해당하는 신체의 부위가 있다고 봤다.

1) 지혜 : 머리 2) 용기 : 가슴 3) (욕구) 절제 : 횡경막 아래

그리고 이러한 세 가지의 기능이 전 폴리스, 국가, 사회에도 반영된다고 봤다.

1) 지혜 : 정치가 2) 용기 : 군인 3) 절제 : 수공인들, 제작자들

덕론

현대적 의미의 실천철학(윤리학 & 정치철학)과 같다. 플라톤은 덕론으로 지행합일설을 주장한다. 지행합일설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올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을 만나며 '용기란 무엇인가? 정의해보라', '지혜란 무엇인가? 정의해보라'라고 질문한 것은 그저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올바르게 앎으로써 올바르게 행동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참다운 앎에 대한 추구였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덕스럽게 살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진, 선, 미는 일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가장 좋은 것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차원이 진, 선, 미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의 조화에서 가장 덕스러운 삶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음료를 한 잔 만든다고 했을 때, 진선미에 해당하는 조건을 모두 갖추어야 그것이 덕스러운 것이다.

  • 선 : 우리 몸에 좋아야 함. 앎을 갖추고서 마셔야 한다.

  • 진 : 참다운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 미 : 조화와 균형, 황금비로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철인정치

플라톤의 정치론, 철인정치는 플라톤 철학의 핵심이다. 민주주의를 비판하며, 다수결에 의한 판단이 늘 옳지는 않다는 점을 지적했으며, 따라서 철인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시라쿠사로의 세 번의 여행도 철인정치를 실행하고자 했던 시도였으며, 아카데미아도 정치를 할 수 있는 철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

그는 정치의 흐름을 [금권정 > 과두정 > 혁명 > 민주정 > 참주정 > 폭군정치]와 같은 순서로 설명한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 법칙의 악순환을 근절하기 위해서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한다.

  • 금권정 :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정치를 주도함

  • 과두정 : 돈을 받은 몇명의 사람이 우두머리를 차지함

  • 혁명 : 다수의 욕망을 만족하지 못하므로 혁명이 일어남

  • 민주정 : 모두가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자유가 넘쳐서 혼란을 야기함

  • 참주정 : 혼란을 수습하는 참주가 등장함

  • 폭군정치 : 참주가 권력을 독점함

철인정치는 철인, 철학자, 철학자에게 교육받은 정치가가 정치를 해야한다는 사상이다. 또한 국가도 1) 지혜를 가진 정치가, 철인, 철학자 계급 2) 용기를 가진 군인 계급 3) 절제하는 시민 으로 구성된 계급론을 따라야한다고 보았다. 모든 사람이 투표, 선거를 통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보는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론

1

미메시스

미메시스는 이미 있는 어떤 것을 잘 모방하는 것으로서 예술이 성취되는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용의 눈에 점을 하나 찍었더니 완벽하게 용을 닮아서 승천했다고 하는 화룡점정처럼 예술의 이상을 모방으로 본 것이다.

플라톤은 예술은 모방을 하기 때문에 거짓된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화가가 사과를 모방해서 그림을 그린다면, 눈에 보이는 사과는 이미 그 자체로 사과의 이데아를 나누어 받은 모방품인데, 그것을 또 그림으로 모방하고 있으므로 이는 모방의 모방이 된다. 이데아로부터 두 번 멀어진 것이 예술 작품으로서의 사과이기 때문에 거짓된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2

시인추방론

플라톤은 시인은 참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것으로부터 더 멀어진 것, 거짓된 것을 이야기하는 자이기 때문에 국가(폴리스)로부터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예를 들어, 용기를 모방한다고 해보자. 용기의 이데아를 나누어 받은 사람은 진정으로 용기 있는 군인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용기있는 사람의 외관만을 모방하게 된다. 영웅물에서 우리는 영웅의 외적 모습만을 볼 수 있다. 즉, 용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람이 어떤 식으로 용기의 본질을 실천하는지와 같은 원리적 설명을 하지 않고 단지 외관만을 모방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과 외관만 용기있는 사람이 구별되지 않도록 하는 혼란을 초래한다.

지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지혜의 이데아를 분유받은 진정한 지혜의 상속자 철학자와 외관만 철학자인 가짜 철학자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은 철학자를 젊은이들을 현혹시키고 허황된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으로 묘사했고, 이후 소크라테스의 사형까지 연결됐다.

플라톤은 시인은 모방을 통해 거짓을 진실처럼 이야기함으로 인해 참과 거짓 중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게 사람들의 마음을 흐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추방해야한다고까지 이야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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