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학
서사시와 철학
철학은 역사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이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역사라는 명목 하에 있는 사유, 사상을 공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 개념을 잠시 이야기해볼 수 있다.
하나는 역사를 발전으로 보는 관점이다. 발전이라면 분명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일 것이다. 즉,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나아가는 것이 발전이다. 역사가 발전이라면 반드시 역사의 목적을 전제로 해야 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현재 신적인 성격을 가진 게 아니라 잠재적으로 자기고 있기 때문에, 인생의 목표는 잠재되어있는 신성을 현실화하는 것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과 씨 안에는 사과나무와 사과라는 모습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사과 씨의 목적은 사과 열매를 맺는 것이 되고, 그런 관점 하에서 역사를 발전이라고 봤다. 성경과 이어지는 사고 흐름이다.
반면, 역사를 반복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니체의 영원회귀,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이 이 관점과 이어진다. 역사는 발전이 아니라 다시금 다른 방식으로의 되풀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철학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철학사의 이론은 전진하는 발전 모델인가 아니면 근본 질문이 다시 곱씹어지는 반복의 형태인가? 철학은 근본적으로 시대의 자식이고, 역사 속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두 관점을 짚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이후 관념론과 유물론으로 이어질 내용이다.
왜 모든 철학은 현재 살아있는가
모든 철학은 현재도 생명력이 있다. 즉, 독자들이 원하고, 읽고 싶어하고, 스스로 배우고자 한다. 철학은 근본 질문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철학 공부를 하는 것, 철학적 사유를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역사적이다. 그 근본 질문은 Metaphysics, 형이상학, 존재론이다. 철학의 핵심 개념이자 가장 오래된 사유의 영역이다.
Meta : 배후, 뒤편 Physics : 물리학, 물리적 이법, 물리적 세계의 이치
즉, Metaphysics는 물리적 세계의 뒤편, 배후를 알고자하는 것이다. Physics는 실험과 관찰의 대상이 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과거의 이론들이 새로운 실험과 관찰을 통과하지 못하면 도태된 것으로 이론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 반면, 철학은 실험과 관찰로서 가설을 검증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폐기되거나 수용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이때의 탐구 대상은 물리학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만물의 원천은 무엇인가
최초의 철학자들의 질문은 바로 '만물의 원천(arche, principle)은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과학의 영역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모든 물리적 세계의 이면에서 작용하는 근본 원천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철학이었다. 우리는 최초의 철학자는 기원전 6세기에 나왔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철학이 나오기 이전의 인류의 삶은 황폐한 것이었는가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기원전 6세기보다 더 거슬러 올라갔을 때에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 고대 문명들이 있었다. 다만 고대 역사를 탐구하는 것이 현재의 삶과 사유에 관여한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성이라는 관점에서 철학의 관심에서 제외하는 이유이다.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어 다루지 못할 뿐이지, 그 이전의 사유가 없었다고 봐서는 안된다. 기원전 6세기 이전에는 서사시의 형태로 그들의 정신, 사유를 엿볼 수 있다.
그리스인들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유목민족은 발칸반도 윗쪽에서 내려와 바다를 만나게 된다. 바다를 정복하면서 바다의 민족으로 등장하게 되고, 이 내용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라는 서사시의 형태로 남아있다. 서사시의 판본이 확정된 것이 기원전 800년, 최초의 철학자가 나왔다고 하는 시점이 기원전 600년이다. 즉 철학이 등장하기 최소 200년 전부터 사사시의 형태로 그들의 사유를 읽을 수 있다. 서사시는 문학작품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종교, 오락, 생활양식, 도덕적 관념, 사법 질서 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의 서사시
여러 대목들에서 평화, 의무, 이성의 힘에 의한 자제 등을 읽어낼 수 있다.
아테네는 펠레우스의 아들 뒤에 서서 그의 금발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에게만 보일 뿐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깜짝 놀라 뒤돌아선 아킬레우스가 곧 팔라스 아테네를 알아보았으니, 그녀의 두 눈이 무섭게 빛났기 때문이다. (...) "나는 그대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대가 내 말에 복족하겠다면 말이다. 그대들 두 사람을 똑같이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염려해주시는 흰 팔의 여신 헤라가 보내셨다. 그러니 자, 말다툼을 중지하고 칼을 빼지 말도록 하라. 다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말로 그를 꾸짖도록 하라."
신의 말을 듣고,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그려져 있지만, 그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화가 난 상황에서 폭력보다는 이성을 통한 자제력을 보이라는 규범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은 그 이전부터 있던 인간의 삶의 양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서사시의 종결과 더불어 철학이 시작되었고, 서사시를 통해 사유된 바를 기초로 해 철학이 출발했으나 한편 서시사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서사시는 인간이 그때그때 처하는 운명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가하는 찰나적인 삶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반면 철학은 만물의 원천은 무엇인가와 같은 영원하면서 늙지도 죽지도 않는 것, 늘 항구적인 것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했다.
미토스(Mythos)에서 로고스(Logos)로의 이행
고대 그리스 철학은 흔히 미토스에서 로고스로의 이행, 더 이상 신화가 아니라 이성에 기대어 세계를 설명하고자 한 시도의 탄생으로 일컬어진다. 이런 사유를 처음 한 것으로 알려진 이늗ㄹ은 에게 해 그리스 식민지 폴리스인 밀레투스에 살던 밀레투스학파(이오니아 학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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