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왜 일하는가
"왜 일하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받으면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버는 건 일을 하는 중요한 이유이자 가치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단지 그 한 가지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해 일한다. 나는 평생을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고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깊은 감동을 느낀다. 한결같이 자신의 일을 올곧게 갈고닦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인격의 깊이와 흔들리지 않는 존재감을 마주할 때마다 일하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행위인지를 깨닫는다. 바로 그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일에 몰두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때때로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의문이 가슴속에서 솟아난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는 걸까?' 그럴 때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려보라. 일하는 것은 우리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고, 마음을 갈고닦으며,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한 행위라는 것을.
일은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에게 근대 문명을 안겨준 서양 사회에서는 '일이란 곧 고역'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구약성서의 서두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일화만 봐도 명백히 알 수 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는 신이 금지한 선악과를 따 먹은 죄로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다. 낙원에서 살 때는 일할 필요가 없었지만, 추방되고 난 후에는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힘겹게 일해야 했다.
인간이 소위 '원죄'를 갚기 위해 노동이라는 벌을 받았다는, 즉 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의식이 깊게 깃들어 있다. 다시 말해 서양 사람들은 '일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어서 피해야 할 행위'라 여긴다. 바로 거기에서 '일은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끝내고 보수는 최대한 많이 받는 게 좋다'는 노동관이 생겨났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서양과 달리 동양에는 이 같은 노동관이 없었다. 일은 분명 고생도 수반하지만, 그 고생 이상으로 기쁨과 긍지, 그리고 삶의 보람을 가져다주는 존엄한 행위라고 여겼다. 일을 한다는 건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넘어 마음을 갈고 닦는 수행이며 더불어 자아실현과 인격 형성을 이루는 정진의 과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지켜온 일에 대한 가치관도 크게 변화했다. 이 달라진 가치관이 바로 앞에서 말했던 '일은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끝내고 보수는 최대한 많이 받는 게 좋다'라는 사고방식이다.
몰입이 인생을 바꾼다
나도 일을 처음부터 좋아하진 않았다. 입사 동기 중 나 혼자만 다 망해가는 회사에 남았다. 유명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직장을 구하기 힘든 상황인데, 지방 대학 졸업자에 인맥도 없고 입사한 회사를 반년 만에 그만둔 내가 재취업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런저런 경우를 따져가며 과연 회사를 그만두는 게 좋을지, 아니면 회사에 남는 게 옳은 선택일지 고심한 끝에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회사를 그만둘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우선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불평불만을 내뱉는 대신, 일단은 당장 눈앞에 놓인 일에 철저히 몰두해보자고 다짐했다. 쓸데없는 잡념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일에 정면으로 부딪쳐보기로 했다. 그러자 치열하게 싸워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런데 일에 완벽히 몰두하자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의 풋내기가 하는 연구에서 잇달아 좋은 실험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를 괴롭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하는 고민과 갈등이 차츰차츰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심지어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어쩔 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일이 힘들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에 더 진지한 자세로 임하게 되었다.
정진하는 것
인간이 느끼는 번뇌는 108가지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욕망', '분노', '어리석음'이 인간을 괴롭히는 번뇌 중 가장 추한 감정이다. 석가모니는 이 세 가지를 '삼독'이라 불렀으며, 인간을 잘못된 행동으로 이끄는 해악의 근원이라 강조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삼독을 완전히 '무'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삼독은 육체를 가진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욕망, 분노, 어리석음을 완전히 제거하진 못하더라도 우리는 그 독소를 희석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무이한 방법이 바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우직하고 건실하게, 그리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지속함으로써 자연히 삼독을 억제할 수 있다. 일에 파묻혀 몰입하면 분노를 가라앉히고 푸념을 줄일 수 있다. 또한 꾸준히 노력함으로써 인격도 수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하는 것은 곧 수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수행으로 정한 여섯 가지 수행을 '육바라밀'이라고 하는데, 그중 하나인 '정진'이 바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일에 전념하고 심혈을 기울여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 그러한 노력이 인격 연마를 위한 수행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갈고닦아 인간을 성장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깊이 있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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